'나는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이라는 태 켈러의 장편소설의 첫 문장이다.
무리 사이에 결코 두드러지지는 법이 없는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으로 받아들이는 주인공 소녀의 이러한 담대한 선언으로, 나는 이 소설이 참으로 사랑스러운 이야기일지 확신할 수 있었다.
투명인간은 어떤 삶일까? 나도 투명인간이 아니었을까? 내 주변을 머물다가 떠나간 투명인간은 얼마나 많았나? 혹시 지금도 그들이 있나? 내가 원하는 순간에 투명해지는 스위치가 있으면 좋을까? 많은 질문들이 지나간다.
소설가와 정확이 같진 않지만, 일종의 글을 쓰는 작업을 인생의 업으로 삼고자 하는 내게, 이토록 사랑스러운 첫 문장으로 말미암아, 어서 빨리 이 소설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읽고싶게 만드는 이 작가의 실력이 무척이나 부럽고, 닮고싶다. 내 논문들의 첫 문장은 어쩜 이리 도식적이고, 건조할까. 글을 쓰는 작업은 쉽다면 쉽지만, 어렵다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글을 쓸 수 있다.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누구든 글을 쓸 수 있지만, 충분한 설득력과 흥미와, 의미를 가지고 살아남는 글은 매우 적다. 그토록 적은 생존한 글들 중 일부가 나로부터 잉태된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위의 흐름과는 상관없는 자기 보고.
어느덧 2023년. 미국에 온지 7여년이 지났고, 나는 많은 시간을 이 낯선 땅에서 투명인간으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위에서 질문한 것처럼, 원할때마다 투명 모드로 갈 수 있는 일종의 스위치가 지난 7년동안 나에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그간의 시간들은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제 새로운 환경의 변화를 맞이할 올해.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직업으로 살아가야 할 올해부터 어쩌면 난 그 스위치를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스위치를 버리고, 투명인간에서 벗어나야 하겠지만, 그게 그리 나쁠거 같지 않다. 오히려 오랫동안 그 순간을 간절히 바라고 준비해왔다고 말하는게 옳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