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이번 여름에 난 드디어 박사가 된다. 그리고 8월 부터는 박사 후 연구원이 될 거다. 물론, 계획대로 잘 된다는 가정하에서다.
6월 말 디펜스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지금은 박사 논문을 열심히 쓰고 있는 중이다. 박사 논문에 본격적으로 열중하기 직전, 두 편의 개별 논문을 저널에 제출했다. 거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것 일까? 박사 논문을 열심히 쓰려고 하기는 하는데, 도통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해당 날짜에 계획한 Progress 에 번번이 맞추지 못하는 현실로 꽤 좌절하고 있다. '결국엔 제출하고, 디펜스하고, 졸업하겠지'라는 막연한 긍정주의에 애써 위로하며, 오늘도 난 내 졸업 계획을 세워둔 엑셀파일을 수정한다.
박사의 의미는 무엇인지 요즘 종종 생각한다. 어느 분야의 박사라는 게 무슨 의미일까? 내가 지금 연구하고, 공부하는 분야에 대해 내가 내 자신을 박사라고 떳떳하게 부를 수 있을 만큼 당당한가라고 자문한다. 나는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이긴 한건가? 나중에 연구자, 혹은 교수가 되어서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분야의 정수와 최신 지식, 그리고 내가 조금이나마 기여한 부분을 학생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있고, 확신에 차서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이 아직은 없다. 그렇다면 박사를 딴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Imposter 신드롬이라는 걸까? 박사라는 학위는 더 화려하고 풍족한 삶을 살기 위한 자격증 같은 것에 불과했다고, 그래서 마침내 이 시골의 군대같은 공간을 드디어 졸업하고 떠날 수 있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난 허탈했다. 박사의 의미가 누군가에겐 그 정도에 불과했구나.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물론 이는 지금 내가 논문 쓰는 거에 지쳐있다는 방증이기도 할테다. 지금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에 늘 차선의 방식으로 접근하려 하는 느낌이다. 최선을 선택하고, 물고 늘어지기 보단, 적당히 타협하고, 늘 현실 가능한 대안을 모색하고 택하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논문을 쓰는 게 맞는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박사의 자격을 당당히 갖추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오늘도 난 박사 논문을 쓴다. 사실 오랜만에 쓰는 이 일기도 사실은 수단적인 목적으로 접근했다. 일기를 쓰면, 내 마음이 조금이나마 정리가 되고,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을 받으니까. 염치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기라도 써가며 내 마음을 다잡고, 논문을 써야 한다. 걸작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적어도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박사 논문을 내고, 졸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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